자신만의 결을 가진, 한결같은
<위를 봐요!> 정진호 작가
어릴 적,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정진호 작가. 그는 그때의 경험으로 그림책 <위를 봐요!>를 완성했다.
<위를 봐요!>처럼 사소한 행동이 누군가의 삶과 마음, 세상을 바꿀 수 있듯이 사람들은 그의 그림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나고 있다.
건축으로 그림책하는,
그림책으로 건축하는 작가
정진호 작가는 스스로를 ‘그림책’ 작가로 소개했다. “문학에서도 소설가,
시인이 있듯 저는 그림을 그리는 그림책 작가로 저를 소개하고, 소개받고
싶습니다.” 그의 첫 그림책 작품은 <위를 봐요!>. 모든 작가가 그렇듯,
첫 번째 책이 가진 의미는 특별하다. 그는 “제가 작가가 될 수 있게 해준
책입니다. 어릴 적 삶이 투영되어 있기도 하고요.”라며 <위를 봐요!>를
보석 같은 책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그림책에 표현했던 새로운 시각은 많은 관심을 받았다. 책이
출판되고 이듬해, <위를 봐요!>는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했다. 그때의
소감을 묻자 그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수상이라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설명해주는 건 제가 지속하고 있는
작업의 결이 아닐까요?”
건축학을 전공한 정진호 작가는 계속해서 건축적인 시선과 사고로
책을 만들고 있다. 그림책의 연장선으로 강의를 통해 아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함께 책을 읽고,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사물이나
상황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그는 배움을 전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배우는 점도 많다.
“매번 아이들의 생각에 놀라곤 합니다. 아이들을 통해 작가로서 창작의
힘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기까지
두 살 때, 정진호 작가는 압력밥솥에 손을 데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마지막 수술까지 13년이 걸릴 정도로 여러 번의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입원하고, 수술하고, 퇴원하기까지의 시간이 반복됐고, 병원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책은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였다.
어린 시절의 병원 생활은 지금의 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정진호 작가는
긍정의 대답을 이었다. “병원에서 그림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작가라는 분명한
꿈을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병원에서 지낸 시간이 소중했다는 그는 새로운 관계를 배우기도 했다. 조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더라도, 서로 다른 상처가 있더라도,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자연스레 깨달은 것이다. ‘다리가 없어도 휠체어를 잘 타니 빠른 친구’,
‘팔이 없어도 굉장히 웃긴 친구’처럼 편견 없이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꽃분홍색의 미래가 펼쳐질 아이들에게
“오래 살아남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앞으로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 묻자,
정진호 작가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요즘은 10년만 지나도 잊히는 책이 많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떠나 변함없는 가치를 전하고, 오래도록 사랑받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병원을 누비며 휠체어를 타고, 침대에서 방방 뛰다 간호사 선생님께 혼나기도 했던
그때 그 소년에게 훌쩍 커버린 지금의 정진호 작가는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을까.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또 누구와 친구가 되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외로울 필요도 없고, 만약 외로워도 그 외로움이 나쁜 게 아니라는
것도요. 그냥 너는 너로서 살게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환아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이어서 그에게 <위를 봐요!>의 수지처럼 옥상과 창밖을 바라보며 미래를 걱정하는
환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물었다. “세상은 참 힘듭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다양하고 많은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 속에서 누군가를
싫어하고 비꼬고, 놀리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결코 나를 훼손하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나의 존엄과 정당성은 나로부터 출발합니다.
모두를 응원합니다.” 마지막 장에서 수지의 미소와 함께 분홍색 꽃잎이 번지듯이,
정진호 작가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소아암 어린이들에게 진심으로 따뜻하고
희망찬 응원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