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의 일부를 인영이의 하루에 빗댄 인영대군실록, 큰딸 윤영이의 시각으로 담아낸 가족 여행기 등.
이성규 기자가 펴낸 <나는 아빠다>는 막내딸 인영이의 급성백혈병 투병기이기 전에 가족의 소중한 일상이 담겨있다.
3년 동안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또 재치있게 써 내려간 그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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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기자 생활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2016년, 이성규 기자는 막내딸
인영이의 급성백혈병 소식을 들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기자의 삶을
더 중요시했던 지난날의 후회였다. 그는 변하기 시작했다. 특종을 좇는
기자보다 아빠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게으르기만 했던 아빠는
인영이의 치료기간 동안 매일 부지런히 세종과 서울을 오갔고, 새벽
6시가 되면 인영이의 병상 우선 선택권을 위해 1등으로 항암주사실의
진찰 카드를 찍었다.
그때 <나는 아빠다>도 시작됐다. 백혈병에 대한 정보도 쉽게 찾을 수
없을뿐더러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쓰는 것뿐이었다. 그는 병원의
기자실에서 밤이고 낮이고 저항의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작년 9월,
155회를 마지막으로 인영이는 치료를 종결했고, 책이 출간됐다.
<나는 아빠다>를 책으로 만들길 잘했다고 생각한 것도 역시나 인영이
때문이다. “책에 인영이 이름의 스티커를 붙이고, 열심히 읽는 모습을
봤을 때 뿌듯하더라고요. 책을 읽다가 ‘내가 이랬어?’라고 묻기도 하고요.”
그뿐만이 아니다. 누구든 책에 담긴 기록을 보면 백혈병 환아의 생활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규 기자는 “주변에서 책을 읽고 저희 가족은
물론 환아들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할 때 보람을 느꼈습니다”라며
짤막한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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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것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특히 아픈 아이는 더 아름다운 세상이다.
우리 아이들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오래도록 행복했으면 한다.
- <나는 아빠다> 중 일부 -
“아이들은 참 강해요. 치료하면서 우울하거나 힘든 내색 대신 병원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인연을 더 소중히 여기거든요.” 백혈병과 싸우는 3년
동안 몸과 마음 모두 부쩍 성숙해졌다는 인영이. 이성규 기자는 그런
인영이 덕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치료 때문에 먹지 못했던 유제품을
먹었을 때, 짧았던 머리를 묶었을 때, 인영이가 다른 아이들과 뛰놀 수
있을 때 등. 아픈 아이의 부모님이 그러듯 이성규 기자의 부부도 나중이
아닌 '소중한 현재'에 감사했다.
이성규 기자는 5학년이 된 인영이의 언니, 윤영이에게서도 의외의
모습을 찾았다.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윤영이가 의젓하게 언니
노릇을 할 때, 많이 놀랐어요.” 그는 안쓰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언니의
역할을 누구보다 잘 해내는 윤영이의 모습이 대견한 건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그는 주위 사람들의 위로와 용기를 받았던 순간도 잊지
못한다. 세종에서 함께 생활하는 친한 기자와 공무원들은 청사 안으로
헌혈차를 부르기도 했다. 그의 주변에는 이렇게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셀 수 없었다. “무심코 들은 위로의 말에 눈물을 쏟아낸 적도 많습니다.
사람에게서 받은 진심이야말로 많은 힘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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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기자는 <나는 아빠다>에서 기자로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그는 암 환자가 겪는 분노에서 체념, 달관으로의 단계까지 겪은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의료시스템이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소아암
환아들에게는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정부의 재정정책에서 소아암
치료 환경 개선에 투자가 됐으면 합니다.”
드디어 올해 2월, 인영이는 금메달을 받았다. 이는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이 부모회와 병원 등을 통해 전달하는 치료종결 기념메달이다.
이성규 기자는 “인영이가 매우 아껴요. 늘 걸고 다니면서요. 저희 부부도
지난 3년이 떠올라 울컥했습니다.”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미국으로 1년간의 연수를 떠난 인영이네 가족. 이성규 기자는 인영이가
잠꼬대를 영어로 하는 날을 기대한다며 장난스레 운을 뗐다. 이내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며 “아빠보다 주사를 더 잘 맞는 인영이가 다시
건강해져서 그저 고맙습니다. 큰딸답게 아빠의 잘못된 점을 냉철하게
비판해주는 윤영이와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아내
미선이, 사랑한다는 말로 부족합니다.”라고 덧붙였다.
평범한 가족이 똘똘 뭉쳐 백혈병을 이겨냈고, 위대한 가족이 됐다.
이제 이성규 기자에게 가족 모두 아프지 않는 것이 소박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꿈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성규 기자는 그와 그의 가족처럼
모든 이가 행복한 날을 기도하고 있다. “백혈병은 불치병이 아닌 난치병
입니다. 마음 단단히 먹고 가족 모두 똘똘 뭉치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저희 가족 모두가 응원하겠습니다.”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은 지난해 치료를 마친
804명의 아이들에게 치료종결 기념메달을 선물했습니다.
더 많은 아이들이 메달을 목에 걸 수 있도록 재단이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