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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야기
  • [이기화 인터뷰] 열정적인 남자 이기화입니다.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201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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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 수 없는 중1 겨울

     

    11월이었지만 너무도 추웠던 겨울.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월드컵 4강의 여파로 시험기간에도 불구하고 저와 친구들은 운동장에 나가서 내가 박지성이니, 안정환이니 하면서 골세레머니를 따라하기 바빴습니다. 그때 우리 교실이 5층이었는데 어느 순간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숨이 찼습니다. 이후 기침에 콧물까지 흘러 감기인줄 알고 동네 병원을 다녔습니다. 동네 병원에선 그냥 감기라며 올해 감기가 독해서 오래 갈 거라고만 얘기하더군요. 그런데 증상은 더 심해지고 나중엔 어지럽기까지 하는거예요.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 큰 병원으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폐렴과 기관지염인 것 같다며 입원하라고 했습니다.

     

    입원은 저에겐 적지않은 충격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병원에 한 번도 입원한 적이 없었거든요. 외래진료가 끝나고 어머니가 진료비 계산을 하는데 다른 한쪽에서 소아암 어린이들을 돕는 크리스마스카드 판매와 모금을 하고 있더군요. 저는 안쓰러운 마음에 주머니 속 구겨진 천원짜리를 모금함에 넣었습니다. 그 돈이 저에게 다시 돌아오리라고 생각 못한 채...

     

    3일 뒤 입원하여 피검사를 했는데 다음날 나온 결과에서 수치가 잘못 나온 것 같다며 정밀검사를 했습니다. 그때까진 편하게 만화책을 보며 폐렴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며칠 뒤 의사 선생님께서 급하게 할 얘기가 있다며 어머니를 찾으시는 거예요. 얼마 후 할머니께서 저를 보자마자 털썩 주저앉으시며 우시는 거예요. “할머니 왜 그래? 왜 그래?” 하는 말에 한참 뒤 할머니께서는 “아이고 우리 손자 백혈병이래” 하시며 계속 우셨습니다.

     

    저는 그냥 멍하니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다가 창밖에서 울고 계시는 어머니를 보며 저 역시 엄마 엄마 하면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저의 치료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치료생활

     

    폐렴치료를 마친 후 저는 소아암 병동으로 옮겨졌습니다. TV에서만 보던 광경이 내 눈 앞에서 나타나자 전 두려움에 다시 한 번 울었습니다. 한시가 급한지라 바로 항암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빨간약, 누런약, 무색약 닥치는 대로 맞았습니다. 원래 건강한 몸이라고 구토 한 번 안 하고 밥도 잘 먹고 한 달을 버텨낸 것 같습니다. 머리도 안 빠지더군요. 주위에서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사선 치료가 제 몸에 그렇게 큰 영향을 주게 될 줄 몰랐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고 2~3일이 지났을 때쯤 자고 일어나니 베개에 머리가 수북이 빠져 있더군요. 한 번도 하지않던 구토도 이때부터 시작했습니다. 췌장염이라는 합병증까지... 정말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습니다.

     

     

    꿋꿋하게 이겨낸 학창시절

     

    저에게 중학교 2~3학년은 힘든 시기였습니다. 출석일수 부족으로 1년을 유급하고 2004년 중학교 2학년으로 복학했습니다. 처음 복학했을 때 저의 빼빼마른 몸, 숱 없는 머리, 매월 3~4일의 입원 등... 친구들은 자신들과 다른 상황에 놓여있는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았습니다.


    먼저 졸업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아프지 않았더라면 친구들과 함께 했을텐데... 많이 울었습니다. 3학년 때 몇몇 친구들로 인해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렇게 매달 병원 다닐꺼면 학교를 왜 다니냐?’ ‘머리숱이 왜 없어?’라며 놀렸습니다. 놀려도 아무말 못하고 있는 저를 보면서 친구들은 저를 아주 소심하고 약하게 본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내가 참고만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저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먼저 저의 소심한 성격부터 바꿔야겠다고 다짐하고,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도 걸고, 맛있는 것도 서로 나눠 먹으며 저의 소심한 성격을 조금씩 바꿔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차차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생활하게 되었죠. 그런데 그땐 제 병을 숨기기에만 급급했었습니다.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말이죠.


    하지만 오히려 아팠던 얘기를 먼저 꺼내니까 친구들은 정말 대단하다며 완치될 때까지 응원하겠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하나, 제가 아팠던 것을 친구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무사히 수능시험도 끝내고 지금까지 잘 견뎌온 내 자신에 감격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회복지사의 꿈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은 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복지학과에 수시지원을 하였습니다.
    솔직히 저는 성적이 좋지 못했어요. 그래서 내신보다 면접에 더 신경썼습니다. 면접을 보러가서 교수님들께 큰소리로 “열정적인 남자 이기화입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이전에 소심했던 성격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제 자신을 바꾼 결과가 이곳에서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저의 얘기를 교수님들께 솔직하게 다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병을 이긴 과정도 말이죠. 제 생각엔 이것이 조금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했던 말도 생각나네요.

    “저같이 출석일수 부족으로 인해 유급하는 학생이 없어질 수 있도록 치료중인 중고등학생을 위해 병원에 학교를 세우고 싶습니다.”라고 했던 말도 생각나네요. 최근에는 다양한 제도가 생겨서 저처럼 출석일수 부족으로 유급하는 학생은 없어졌다고 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벌써 입학 후 일년 반이 지났네요. 그동안 학생회 활동을 하고 MT, 단합대회 등도 추진하는 평범한 학생을 넘어 이제는 남들 앞에 떳떳이 나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년이면 완치 판정도 받고, 이제는 정말 아프기 전 생활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치료 받고 있는 친구들도 모두 저보다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저도 사회복지사란 제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도, 자원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며 치료 받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완치자 이야기에 자신을 소개하고 싶은 분은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with@kclf.org, 02-766-7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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