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2009년 치료종결 후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한 이승주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는 2006년 이맘때부터 지금까지의 제 이야기가 환아, 그리고 가족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저는 2006년, 그러니까 초등학교 6학년 3월에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몸살인줄 알았지만, 어린 저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병을 진단받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때, 저는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되었고 긴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힘든 순간이 정말 많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일은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인한 손과 발의 신경 손상이었습니다. 글자를 제대로 쓸 수도,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밖에서 뛰어 노는 것을 좋아했던 저로서는 백혈병 진단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다행히도 재활을 통해 어느 정도 제 신경은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기나긴 병원생활과 통원치료를 하면서 제가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소중한 힘이 되었던 건, 제 곁에서 함께 해주는 가족들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투병 중인 저를 지켜보는 부모님이 저보다도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런 부모님께서는 제 앞에서는 항상 웃으며 힘든 내색 한 번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발병부터 완치가 되기까지 수많은 고난을 겪었던 저에게 가족의 응원은 마르지 않는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집중치료가 끝난 후, 저는 학교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낮은 면역력과 약간의 장애 때문인지 부모님은 저의 학교 복귀를 매우 걱정하셨지만, 부모님의 걱정과는 다르게 제 학교생활은 정말로 멋지게 펼쳐졌던 것 같습니다. 지루했던 병원생활과 비교해 학교에서 공부하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병원생활 때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꿈같은 일들이었으니까요.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도 제가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는 것이 대단하다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친한 친구들은 저와 같이 다닐 땐, 제가 다리가 불편하다는 걸 잊지 않고 저와 발맞춰 걸어주고 기다려주곤 했습니다. 이렇게 학교생활의 행복은 저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아직 조금은 불편한 손과 다리지만, 저는 예전처럼 다시 또래들과 그림도 그리고, 밴드활동도 새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투병생활로 인해 어긋나있던 모든 것들이 하나, 둘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저는 당장 오늘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것들까지도 생각하고, 준비해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긴 투병생활동안 잊고 있었던 장래희망과 이루고 싶었던 꿈들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또래 친구들이 그렇듯 똑같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진로를 차츰 잡아나갔습니다. 적지 않은 고민을 하고, 내적인 갈등 또한 많이 겪었지만 무사히 원하던 대학을 진학함으로써 지금은 제 꿈에 한걸음 더 다가섰습니다.
친구들은 아직도 가끔 제가 아팠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항암제의 부작용 때문에 혼자 걷지도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녔던 그때가 마치 꿈같이 느껴지곤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당시엔 정말로 길고 길었던 고통의 순간들이, 겪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 같던 그 때의 기억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워주고 있으며,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게 해주는 그 무언가로 제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 주위의 누군가가 다리가 왜 불편한지, 학교를 왜 1년 늦게 다녔는지 물어보곤 합니다. 이런 질문이 저의 상처나 괴로웠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할 것만 같지만 왠지 모르게 저는 이런 질문에 담담하게, 오히려 조금은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더군요. 그건 긴 투병생활의 경험이 제게 남긴 것이 단지 아프고 괴로웠던 기억만이 아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어린 친구들에게 긴 투병생활은 분명 괴롭고 힘들 겁니다. 하지만 어차피 겪어내야 할 그 시간을 단지 고통의 시간으로만 생각하기보다는 그 시간의 끝에 펼쳐질 멋진 세상에 닿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지금 병원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는 어린 친구들과 그 가족 분들이 꼭 멋진 세상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