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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야기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 - 김한솔 완치자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2016.01.15
  • 완치자이야기김한솔 (2)

    나는 주재원인 아빠로 인해 싱가포르에서 태어났다. 1996년생이니 올해 만 19살이다. 위로 형과는 6살 차이가 나는지라 부모님은 물론 양가 집안에서도 막내의 특혜를 충분히 받으며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우리 아빠 엄마가 제일 감당이 안 되는 이가 나라고 했을 만큼 땡강도 제법 심한 새침데기 네 살, 그러니까 만 3년 8개월 즈음, 한 세기가 바뀐다고 떠들썩한 2000년 2월 24일 청천벽력 같은 백혈병 진단을 받고 싱가폴에서 2년 동안 무사히 치료를 종결하였다. 엄마의 병상일기에는 내가 그 동안 치료차 입원한 것과 열이 나서 입원한 것까지 모두 하면 치료 2년 동안 12번을 입원하고 퇴원하였다고 하신다. 열대 지방의 더운 나라에서도 전기장판이 없으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는 엄마의 말씀을 듣노라면 엄마의 춥고 시린 가슴을 느낄 수 있어서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 후 모든 치료를 마치고 유치원에도 다시 가고 서울 나들이로 비행기를 타고 오는 등 나의 일곱 살은 또 다시 찾은 행복으로 물드는가 싶었지만 1년 후 재발이라는 더 큰 고난이 찾아오고 말았다. ‘그 때를 생각하면 속이 타들어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았다’고 엄마는 늘 말씀하신다. 물을 입에 달고 살아도 목이 타들어가서 살 수가 없었다는 엄마의 말씀을 떠올리면 또 목이 메고 만다.

    재발 후 석 달 동안 싱가포르에서의 항암치료로 병원을 방문할 때는 전 세계가 사스 공포로 두렵게 했지만 열 한번 나지 않고 석 달 동안의 항암 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2003년 6월 첫날 제대혈 이식을 받고자 한국에 있는 여의도 성모병원까지 오게 된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는 순간이었다. 골수가 없어서 낙심하고 그 후 제대혈은행에서 내게 맞는 제대혈을 찾기까지의 순간순간은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가 함께했기에 가능했던 기적 같은 일이었다. 2003년 9월 15일 제대혈 이식을 받은 날은 나의 두 번째 생일이다. 올해로써 12년 생일을 맞았으니 어찌 생각하면 아득한 옛일이지만 우리 가족은 늘 그날을 꺼내어 얘기하고 감사한다. 지나가면 생각하기도 싫은 병이라고 꺼내기 꺼려한다지만 나나 우리 부모님은 항상 그날을 자주 이야기한다. 그리고 누가 묻지 않아도 나는 내 병을 당당히 이야기하곤 한다. 그래야 지금의 나와 우리 가족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생각하면 우리 집은 내가 아플 때도 항상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박수치며 늘 웃고 사는 즐거운 집이었다. 수치가 급격하게 떨어지지만 않으면 늘 다른 사람들이 와서 함께 밥을 먹고 피아노를 치며 찬양하고 기도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러다 보니 난 그때 내가 무슨 그런 심각한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늘 웃고 다녔다. 채혈로 인한 수백 번의 바늘 찔림, 골수검사, 항암제, 민둥머리, 하얀 마스크,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달덩어리 같은 얼굴, 면역 억제제 부작용으로 털복숭이 얼굴……. 백혈병과 그때를 떠올리면 한없이 달라붙는 이야기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현재 감사하고 행복한 것들이 너무 많다.

    희망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진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다. 나의 병상 일기에는 항상 "형 보고 싶다, 학교 가고 싶다, 교회 가고 싶다." 로 마무리 지었다. 부모님의 대답도 늘 같았다. "당연히 학교도 가고 교회도 가고 형도 볼 수 있고말고!". 이렇듯 나나 우리 가족은 희망의 마음으로 희망의 이야기를 끝없이 서로에게 말해주었는데, 그것이 나의 병을 이기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된다.

    마라톤 완주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이다. 기록 단축을 위하여 옆에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하여도 달리는 선수가 "아니야 나는 할 수 없어" 라고 혼자 단정지어버리면 모든 면에서 우월할지라도, 체력적으로 부족하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 기록을 단축할 수가 없다. 그처럼 마인드 컨트롤이 가장 중요하다. 이는 오롯이 환자 스스로의 몫이다. 두 번째는 페이스메이커이다. 페이스메이커라는 사람은 마라톤 같은 장거리 육상 경기에서 우승에 도전하는 선수의 기록을 앞당길 수 있게 속도를 조절하고 유지해주는 사람이다. 단지 기록 단축뿐만 아니라 마라톤 완주의 성공여부마저 페이스메이커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할 만큼 이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이 부분은 가족들의 몫이다. 이때가 바로 가족이 하나 되고 서로를 사랑하는 시간이다.

    우리 형은 나로 인해 말도 못하게 희생을 했지만 누구보다 남을 배려하는 멋진 사람으로 지금 하버드 의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 부모님 역시 아픈 이들을 위해서는 위로의 메시지를 누구보다 강하게 전하는 사명자로 살고 계시고, 나 역시 지난날의 고난을 통하여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우뚝 서 있다.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백혈병이라는 고난이 말도 못하는 축복으로 우뚝 서 있는 지금, 희망의 말을 쉬지 않고 자신에게 속삭이며 희망의 큰 그림을 가족 모두와 함께 그리라고 감히 큰소리로 말하고 싶다. ‘희망’은 쟁취하는 사람들의 몫이니까.

     

    김한솔(1996년생)

      2000년 2월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진단

      2003년 9월 제대혈 조혈모세포이식

      2004년 6월 치료종결

      2015년 현재 싱가폴에서 군복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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