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 꿈도, 희망도, 미래도 없어져 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다시는 병원 밖의 세상에 나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혔습니다.
병원 생활을 하면 할수록 공포심은 억울함과 분노로 변해갔습니다.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또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치료로 망가져 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을 미워했습니다. 나에게도 꿈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병원에 갇혀서 서서히 세상에서 잊혀 가는 것 같아서 병원 밖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다시 학교를 다니고,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던 그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항암치료를 다 마쳤을 때 저는 19살이었고, 대학교에 진학할 나이였지만 고2 여름방학 때 진단을 받고 학교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이 막막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대학은 갈 수 있을까?’, ‘대학에 가더라도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고등학교 1학년 성적이 있어 대학에 지원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하루하루 치료를 견디느라 다가올 나의 미래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치료가 끝났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나의 꿈이 무엇인지, 그 꿈에 다가서려면 어떤 것들을 준비하고 계획해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진로를 결정할 때 어려움이 정말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랜 기간 병원에 있을 때 내가 잘하고, 좋아하며,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치료를 마친 이후 나 자신에게 그 고민에 대한 물음을 수도 없이 던진 끝에 답을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저의 꿈에 한 발짝 한 발짝 느리지만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현재 건축가가 되기 위해 건축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대학교에서 건물을 짓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과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의 ‘자기성장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환아들을 위한 쉼터’를 설계해보고, 쉼터의 모형을 만들어 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꿈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도전하고, 꾸준한 자기개발을 통해 좋은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려고 합니다.
지금 치료를 마친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투병 중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세상과 단절되어 사람들에게서 잊혀간다는 생각과 병원에 갇혀있다는 심리적 구속감과 답답함이었습니다. 아마 지금 치료 중인 아이들도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겠지요. 치료 중인, 그리고 치료를 끝내고 새로운 시작을 앞둔 아이들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한 꿈을 꿔”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당장은 미래가 어둡고 막막하게 느껴지겠지만 밝고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나에게는 꿈이 있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꿈을 꾸다보면 자신감이 생기고 그 자신감은 점차 희망의 불꽃이 되어 어둡고 막막했던 미래를 밝히는 힘이 될 거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수민(1997년생)
2014년 8월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
2015년 2월 치료종결
현재 영산대학교 건축학과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