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이에서 벗어나
진단 받기 전, 저는 매우 활발한 아이였어요. 오빠가 있어서 그런지 사내아이처럼 고무줄놀이보다 축구를 좋아했고, 인형놀이보다 로봇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리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언젠가부터 머리위쪽에 볼록하게 혹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단순히 머리에 지방이 찬 것이라고 제거하면 된다고 하여 아무런 준비 없이 병원으로 갔는데 이전의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어요. 너무도 갑작스럽게...
병원생활을 떠올리면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컸던 거 같아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또 치료받는 나를 보면서 힘들어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많이 무겁고 힘들었어요.
이런 힘든 병원생활을 견디게 해준 힘은 음악이었어요. 병실은 매우 갑갑한 공간이었죠. 거의 우리는 매일 틀에 박힌 동선에서만 생활하는데 음악을 들으면서 해방감을 얻고는 했죠. 몇 달 간격으로 아빠가 새로운 CD를 사오셨는데 그때를 제일 기다렸던 거 같아요. 그리고 매일 병원에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저만의 취미를 개발했죠. 그 중 하나가 풍선아트인데요. 책을 보면서 독학한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 병동에서는 최고의 실력이었어요. 그렇다보니 제가 무언가 만들 때면 어린 꼬마 친구들이 ‘저도 만들어주세요.’ 라는 눈빛을 쏘아 보내곤 했어요. 그 때, 하나를 만들어주면 그 친구들은 무엇보다 환한 웃음으로 값진 보답을 했죠. 때론 그 아이들의 부모님께서 맛있는 것을 가져다 주시기도 했어요.
또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 선생님들의 격려를 빼놓을 수가 없네요. 바쁘신 가운데서도 언제나 저의 말 상대가 되어주시고, 때론 영화를 노트북에 다운 받아와 보여주시기도 하셨어요. 긍정적인 생각에는 힘이 있다며 부정적인 저의 사고를 긍정적인 사고로 이끌어 주시기도 했구요. 그 분들은 저에게 또 다른 친구였지요. 그 분들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1년 반이란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그리고 치료생활로 내가 얻은 것이 있다면, 아팠던 시간들 덕분에 생명을 소중히 여기게 된 것, 그리고 매일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다시 평범하게 살아가기
치료가 끝나고 난 후에도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죠. 그래도 굳이 변화를 꼽자면 치료 받았던 1년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많이 변해버린 새로운 환경들 때문에 위축되어서 그런지 치료받기 전보다 훨씬 조용한 아이가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두려움 반, 설레임 반이었죠. 솔직히 한동안 너무나도 새롭게 변해버린 환경 때문인지 적응하기가 힘들었어요. 치료 종결 하고 3개월 만에 학교에 들어간 터라 아이들과는 외모적으로 다른 모습이었고 그로 인해 아이들의 시선은 따가웠죠. 좀처럼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어요. 부모님께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었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학교생활을 했어요.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체력이 약해 10분만 걸어도 다리가 아팠던 제가 2시간 가량을 올라가야하는 산을 극구 말리는 선생님의 손을 뿌리치고 끝까지 올라갔어요. 그렇게 하나 둘 노력해가니까 조금씩 친구들이 다가왔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제가 암환자였던 일 때문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었어요. “쯧쯧”, “불쌍해”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제가 너무 작아지는 것만 같아서 싫었어요. 심지어 불쌍하다고 눈물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꿋꿋이 이겨냈고 이 자리에 이렇게 당당하게 서 있는데 말이에요.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벌을 받거나 매를 맞을 때 열외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 때마다 친구들이 작은 소리로 “쟤는 왜 벌 안서?”, “쟤는 왜 안 맞아?” 말 할 때마다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들께 일일이 찾아가서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대해 달라고 부탁했어요(잘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사람들이 불쌍하게 쳐다보고, 또 불쌍하다고 말할 때마다 태연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어요. 더 이상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웃으면서 이제는 괜찮다고, 다 나았다고 말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다독이며 굳세게 씩씩하게 저를 지켜낸 것 같아요.
스무살이 된 지금, 저는 굉장히 즐거운 대학생활을 하고 있어요. 하루하루가 특별하고 소중해요.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 친구들과 새로운 경험들을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어요. 비록 경제적인 문제로 제가 원하던 대학, 원하던 학과에 입학하지는 못했지만, 난 젊으니까, 20대니까, 이 시간들을 통해 많은 경험을 해보면서 저의 진정한 꿈을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누구든 스스로 이겨내야 할 일들이 있기 마련이야. 지금까지 열심히 잘 싸워서 버텨왔듯이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씩씩하게 잘 이겨내 보자. 나는 강한 사람이야. 안되면 되게 만들자구!”
치료중인 아이들에게
지금 당장은 힘들지도 몰라. 하지만 포기하지 마. 너희는 할 수 있어. 긍정의 힘은 정말 존재하고 있단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너의 주위를 둘러봐. 많은 사람들이 널 응원하고 있어. 꿈을 가져! 그 꿈은 너의 미래를 만들어 줄 거야! 그깟 암 덩어리한테 너의 꿈을 뺏길 순 없잖아? 다시 웃으면서 일어서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