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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야기
  • [서유나 인터뷰] 희망을 갖고 내일을 위해 전진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2011.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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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소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알았던 아이들, 그 곁을 지키고 있는 따뜻한 엄마의 모습에 안주하며 다시 곤히 잠들곤 했던 아이들…. 7년 전의 병원생활을 되돌아 볼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들이다. 아니, 내가 기억하고 싶은 모습들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프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더 많았으니까.


    나는 어려서부터 나름 건강하다고 자부할 만큼 잔병치레도 없었고, 식탐도 뛰어나고, 운동도 곧잘 했다.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겠다. 중학교 3학년 새 학기의 어느 날부터인가 교복 셔츠의 목 부분이 잘 잠기지 않았고, 다리에도 붉은 반점들이 흩뿌려진 듯 생기기 시작했다.


    내 팔의 드문드문 난 멍들을 보고 학교 친구들과 함께 우스갯소리로 설마하며 그 무서운 이름을 꺼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그리고 그 설마는 정말 내 발목을 잡았다.


    백혈병? (사실 난 아직도 그 이름을 말하고 쓰는 것조차 두렵다.) 마냥 크고 무서운 병,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래도 무작정 울고불고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다 낫게 해주겠다던 의사선생님의 약속과 내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굳이 드라마 속의 백혈병 환자들처럼 세상 다 끝난 듯이 우울해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행히도 나는 머지않아 다 나을 것이며, 다시 예전의 나로 혹은 더 나아진 나로 당당하고 멋있게 돌아갈 거라는 믿음과 함께 힘든 여정을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울지 않겠다던 내 다짐은 처음 3인실로 옮겼던 날, 같은 병실 안의 아이들을 보고 곧바로 무너져 내렸다. 핏기 없이 핼쑥한 얼굴, 주사바늘 때문에 여기저기 푸르딩딩해진 손등과 발등, 빼빼 마른 앙상한 팔다리에 헐거워 보이는 환자복을 입은 모습들을 보니 갑자기 겁이 난 것이다.


    아마도 그 아이들을 본 순간, 그들의 아픈 얼굴과는 달리 크고 맑은 눈동자 속에서 막연한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던 내 자신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다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참고 참았던 울컥함이 두려워하던 진짜 현실과 마주하게 되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터져버렸다. 첫 날부터 펑펑 울어버렸으니…. 그 때 그 병실의 동생들은 아마 나를 다 큰 울보 누나로 기억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 때부터 나는 처음 가졌던 그 희망을 위해 매 순간 자꾸만 나약해져 가는 내 자신과 싸워야만 했다. 그 과정 속에는 물론 아프고 슬프고 힘든 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나보다 한참 어린 아이들도 저렇게 잘 버티는데, 내가 약 먹기 싫다고, 주사 맞기 싫다고, 검사받기 싫다고 무작정 징징대는 건 가당치도 않았다.


    가끔씩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처럼 아프거나 짜증날 때 펑펑 울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고, 항상 옆에서 나를 지키는 엄마에게 마음에 없는 서운한 말들을 하며 되지도 않는 투정들을 고집할 때도 많았으며, 즐겁게 학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바라볼 때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초라해진 내 모습에 분하고 억울해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곧 지나가버릴 두려움에 져버리고 나면 미래의 건강해진 내가 지금 이렇게 좌절해버린 나를 보고 후회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당장은 내 몸과 마음은 고통을 겪고 있지만, 잘 견뎌낸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마냥 슬픔에 빠져 멍하니 있으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건강해질 그 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기로 했다.


    작게나마 해보고는 싶었으나, 학교 다니면서 하기 힘들었던 것들…. 사실 가장 독했던 항암 치료를 끝내고 나서는 연필조차 집을 수도 없었지만 일본어를 시작해보기도 했고, 한자 자격증시험도 준비하고, 혼자 그림도 그려보고, 일기도 쓰고, 내 미래에 대한 생각도 충분히 해본 것 같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시간들은 마냥 고통의 시간만이 아니라 다시 열심히 뛸 나를 위한 충전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치료를 받으면서도 앞으로의 나의 현실이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했을 즈음, 나와 더불어 우리 가족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중학교 3학년 새 학기 때 발병한 터라 출석일수가 부족하여 졸업이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래도 마냥 포기할 수는 없어서 모자와 마스크를 끼고 용기를 내어, 중요한 시험 정도는 종종 학교에 가서 보고 오곤 했다. 그때마다 나를 반겨주던 따뜻한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었기에 다른 전교생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들을 참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기꺼이 아픈 날 위해 눈물까지 흘려주셨던 나의 담임선생님께서는 학교를 설득하여, 결국 그 해 내가 친구들과 함께 졸업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나중에 나도 꼭 그 분과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확신이 든 순간이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문제는 고등학교 진학문제였다. 모자와 마스크를 쓴 이 모습으로 새로운 고등학교를 다녀야 하는지, 아니면 혼자 편하게 검정고시를 준비할 건지를 결정해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건 내게 있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과 이런 내 모습을 숨기고픈 도피처 중에 선택해야 하는 일이었다. 사실 나는 이미 잠정적으로 그토록 다니고 싶었던 ‘학교’를 마음에 담아 둔 채, 자꾸만 편한 곳에만 안주하며 도망가려는 내 자신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또 다른 희망과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기로 했고, 지금 이렇게 내가 원하는 곳까지 후회 없이 잘 걸어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순간부터 희망해 왔던 ‘참된 선생님’이 되기 위한 길목에 서 있다. 만약 그 때 내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채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웃고 있었을까? 마냥 두려워 보였던 그 길에서 나는 마침내 그토록 기다렸던 행복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고, 내가 그토록 원하던 내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다. 누군가 지금껏 내가 했던 일들 중 가장 잘한 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난 그 순간 다시 학교를 택한 점이라고 말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나에게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첫 두려움을 직면했을 때 부정적인 생각을 절대 하지 않았던 점, 왜 하필 나일까 하며 신세한탄만 하지 않고 다시 건강해질 나를 위해 내 꿈을 놓지 않았던 점, 나 스스로를 믿고 사랑해준 점 등등…. 결국 이 모든 것들이 희망이라는 원동력이 되어, 지금의 나로 하여금 건강하고 바르게 살게 하고 있다.


    물론 많이 아팠고,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난 결국 희망을 얻었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나의 희망은 계속 빛날 거라 믿으며 내일을 위해 전진하고 있다. 살면서 이보다 더 큰 고난과 시련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만의 특별한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이 귀중한 깨달음을 가지고 앞으로도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다.

     

    지금 치료 중인 동생들에게

    내가 지금 이렇게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내게 희망을 주었던 소중한 분들을 위해서라도 하루하루를 더 값지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지금 치료받고 있는 친구들 또한 자신을 응원하고 사랑해주는 분들, 먼발치에서 용기와 희망을 보내주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지금 그 순간을 꼭 잘 이겨내 주었으면 한다.


    지금은 많이 힘들고, 서럽고, 때로는 내 자신이 가장 불행하게 느껴지겠지만, 이것 또한 곧 지나갈 것이며,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을 잃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게 되면, 어디에서건 희망은 스스로 구하게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픔을 잘 이겨낸 완치자다. 그 힘든 순간이 언제 끝날까 하고 초조하고 불안했던 나 또한 결국 그 전보다 훨씬 빛나고 소중한 나를 맞이했듯, 우리 친구들도 더 찬란하고 힘찬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갖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완치자 이야기에 자신을 소개하고 싶은 분은 연락 주세요.^^ (cancer@kclf.org, 02-766-7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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