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써보려 하니 예전에 내가 치료받던 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그 때는 너무 힘들어서 너무 정신없이 지나갔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그 상처도 아물어 가면서, 제게 그 아팠던 기억도 이제 추억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픈 만큼 더욱 성숙해졌고, 생각하는 것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아픈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리고 환자 뿐만 아니라 세상에 어려운 일이 닥친 사람들에 대해서도…. 예전 같았으면 ‘어쩌다 저랬대?’하면서 내 일이 아니라는 듯이 말했겠지만,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어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거니까, 더욱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지게 되었습니다.
2008년 눈이 어느 때보다 많이 내리던 해, 빙판길을 미끄럼 타듯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다리가 몹시 당기고 아팠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동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대학병원까지 가게 되고 ‘골육종’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암’이라는 진단보다 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 짜증냈던 철없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엄청나게 많이 아팠던 골수검사에 놀라고, 머리가 없는 아이들이 쳐다보는 것에 한 번 더 놀라고, 점점 내 인생이 꼬여가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항암치료와 수술, 그리고 걷지 못해 타야 하는 휠체어, 이 모든 상황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치료받으면서 저와 같은 진단명의 언니 한 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언니는 팔에 종양이 있었는데 저와 같은 진단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언니는 치료를 마칠 즈음이었고, 나와 항암 스케줄이 달라 저와 엄마의 궁금증을 다 해소하지는 못했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는데, 어디 물어볼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마와 저는 치료 중 특이사항이나 주의사항을 꼼꼼하게 체크하며, 10개월을 이겨냈습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나으면 나와 같은 아이들에게 많이 알려주고 조언도 해줘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설명을 들으러 갔을 때 교수님께서 치료를 마치고 유학을 간 오빠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 때 ‘아, 나도 희망을 가져야겠다. 나도 다 나아서 공부하고 싶다. 앞으로 나와 같은 아이가 왔을 때, 교수님이 유민이 언니도 다 나아서 공부하고 있다 라고 말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정형외과 외래에 갔을 때 앞으로 못 걸을 수도 있다는 교수님의 말에 너무 충격이 커서, 휠체어에 앉아 주먹 쥐며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수술 50%, 자기의지 50%라고 하셨던 말을 생각하며, 더 오기를 부리며 ‘내가 왜 못 걸어? 앞으로 보여줄 거야!’라는 각오로 날마다 걷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난 할 수 있다. 걸을 수 있다.’ 되새기며 잠이 들곤 했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되었지만 수술 후 1년 동안 수술부위가 잘 붙지 않아 다시 재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수술을 기다리는 동안이 치료 때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치료가 끝나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제 모습에 우울해 했습니다.
재수술 날을 잡아놓고 저와 같은 진단명을 가진 5학년 꼬마아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발병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토끼 같은 아이가 나와 같은 상황을 겪게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무슨 말인가 해주고 싶었지만, 머리가 아직은 짧은 제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같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그 아이 부모님을 만나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켜 주고, 유민이도 이제 뼈만 붙으면 걸을 수 있다고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늘 불안한 모습의 아이 엄마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결 나아진 모습이었습니다. 앞으로 이겨내야 할 일이 많은 그 아이와 가족이 힘내서 치료받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재수술 후에 저는 재활치료도 하지 않고, 스스로 운동해서 잘 걸어 다니며,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저는 치료할 때 저와 같은 아이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치료 끝난 지 3년이 지나서도, 비슷한 상황에 있는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들께 연락처를 알려드리면, 모르는 것이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시는데, 그게 전혀 귀찮지 않았습니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치료받을 때는 물어볼 사람이 없었는데, 물어볼 사람이 있는 그 분들이 한 편으로는 부럽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선화라는 고등학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화를 보면서 예전의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선화는 제 이야기를 듣고 울기도 하고, 그 어려움을 다 이겨낸 제가 대단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교수님은 제게 걸을 수 없다고 심각하게 이야기했었는데, 선화에게는 걸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확신에 차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회진 때 교수님이 유민이 언니도 지금 걸어 다니니, 너도 용기 잃지 말라고 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늘 꿈꿔오던 순간이 왔다는 생각에 너무 행복했습니다. ‘남에게 내가 희망이 될 수 있다니….’ 늘 마음 속에서 외쳐오던 ‘나는 희망이고 싶다.’가 효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선화는 지금 항암치료도 잘 받고 있고, 덕분에 모든 게 지금 잘 풀리고 있는 것 같다며 제게 너무 고마워 합니다. 난 한 것이 없는데…. 부끄러워졌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좋은 생각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행복이란 건 진짜 자기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만족하느냐, 만족하지 않느냐도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전 때로는 아픈 것이 후회되고 시간을 돌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어느 한 편에서는 내가 아파서 그동안 보지 못한 것들을 깨달을 수 있게 되어서 좋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몸이 괜찮아지니, 내 존재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희망이 되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도 계속 기회가 된다면 저와 같은 아이들을 만나서 용기도 주고 희망도 주고 싶습니다. 이것이 앞으로의 나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멈추지 않겠습니다.
작은 말 하나가 아픈 아이들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 말인 줄 알기에, 저는 그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할 수 있다고, 이겨낼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너는 혼자가 아니니까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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