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치료받고 있는 친구들에게
안녕? 멋진 친구들아!
너희들은 지금 힘들고 어려운 여정을 시작하고 있겠지?
두렵거나 무섭지는 않니? 그렇다면 긴 여정을 끝냈을 때의 기분이 어떨지 한 번 상상해 봐! 어때? 너희들이 항상 이 기분을 잊지 말고 끝까지 견디어 주었으면 해. 이 모든 것이 지나갔을 때는 너희는 한걸음 더 성장해 있을 테니까!
난 중학교 2학년 때,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이라는 병을 진단 받았어. 아프기 전, 난 친구들과의 싸움으로 마음에 상처를 받고 많이 힘들어 했었지.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마음이 힘들고 지치니깐 몸도 힘들고 지쳐버리더라. 처음에 감기처럼 아파서 동네 작은 병원에 갔었지만 열이 쉽게 내리지 않고 턱과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어. 동네 병원에서는 큰 병원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하더라고…. 큰 병원에서 생전 처음해 보는 각종 검사들, 바삐 움직이는 의사와 간호사들, 그 모든 풍경이 생소하고 불편하기만 했어.
불편함을 안고 6인실에 들어섰을 때, 병실 아이들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어. 스님처럼 동그란 두상과, 핼쑥하고 창백한 얼굴, 그리고 정말 놀랬던 것은 나이가 정말 어린아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었어. 저렇게 조그마한 아이가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힘든 치료일 텐데, 견뎌내고 있다는 것이 참 대단해 보였어. 그리고 오히려 머리카락이 있는 내가 그 ‘대단한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워졌어. 이후 나 역시 그 ‘대단한 아이들’처럼 약물치료를 받게 되고, 독한 항암제 부작용 때문에 견디기 힘든 나날들을 보내게 되었단다.
치료를 받다보니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라. 좀 더 날 많이 사랑해줄 걸, 아껴줄 걸하고 후회가 많이 됐어. 하루하루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치니, 예전의 행복했던 순간들 보다는 불행했던 순간들이 많이 떠오르게 되면서 부정적인 생각만 늘어나게 되더라고. 결국 모든 일에 의욕이 없어지고 나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어. 그리고 나약해지기까지…. 견디기 힘든 상황이 되었어.
그런데!! 어느날 새까만 밤하늘 같던 부정적인 생각에 조그마한 별처럼 가족 생각이 빛나기 시작하더라. 항상 병실에서 가슴 졸이며, 철없이 부리는 투정과 짜증을 한결같이 다 받아주고, 든든하게 지켜주셨던 엄마, 얼마나 힘드실까? 그리고 타지생활을 하며 나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며 꿋꿋이 가족을 이끌어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시는 아빠. 한 번도 아빠의 눈물을 보지 못했지만, 당시 아빠가 많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해. 마지막으로 나 때문에 가족 없이 혼자 외로이 고3 생활을 보내야 하는 오빠, 다들 날 위해 희생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지금 난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 그 순간부터 나는 마음을 달리 먹기로 했어. ‘나의 최선은 병과의 싸움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먼저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버리자라는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했어. 마음이 몸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되도록 긍정적 생각을 하며, 건강한 정신을 갖도록 노력했어. 나의 별,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했고, 또 다른 하나의 별, 병실 친구들을 생각했어.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잘 알기 때문에 많이 의지할 수 있었어. 매일매일 함께 병실생활을 하다 보니 또 다른 가족 같은 느낌이었지. 이렇게 병실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보내니, 어렵고 힘든 치료기간이 빨리 지나간 거 같아. 그리고 정들었던 친구들, 한 명, 한 명,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는 걸 보면서 나도 곧 이 긴 여정을 끝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갖게 되었어.
하지만 친구를 떠나보내야 하는 슬픈 순간도 있었어. 한순간에 일어난 일. 난 무서움이 먼저 앞서더라. 정들었던 친구가 그렇게 가 버리고 나니, 공허함과 허탈함에 이렇게 치료 받고 있는 내가 뭔가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슬펐어. 아직 살아있는 나를 보며, 먼저 간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 값지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 그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건 하늘이 나에게 더 많은 것을 경험하라고 주신 시간인 거 같았어. 그렇게 난 특별한 10대를 보냈던 거 같아.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그 순간순간 이겨낸 과정들이 쌓여 날 더 성장하게 만들었으니까.
치료받는 동안 열심히 사이버학교 수업을 듣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어. 다시 돌아 온 학교, 새 출발하는 마음은 좋았지만, 아프기 전 친구와의 관계에서 받았던 상처를 또 받을까 두려웠어. 그래서 친구들에게 다가가기가 꺼려지고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겠더라고. 그리고 외래를 다니며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결석하는 날도 많았지. 병원에만 있었던 터라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에 끼어 들기가 힘들어지고 친구와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여. 그때 친구문제로 혼자 고민하고, 상담도 받고, 자주 울기도 했어. 지금 생각하면, 참, 왜 그런 것으로 힘들어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그때, 고민을 들어주고, 용기를 준 멘토가 있었어. 멘토의 도움으로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친구들에게 다가갔고, 친해지기 위해 많이 노력했던 거 같아. 그 후 친구들과의 관계는 좋아질 수 있었어. 친구를 사귈 때는 항상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한 것 같아. 내가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너의 마음을 알아 줄 수 없어. 친구와의 관계에서는 용기를 가져! 고등학교 때 인간관계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어. 어려움 속에서 또 난 성장할 수 있었어. 그리고 내 고민을 들어주고, 나에게 용기를 준 멘토가 있다는 게 정말 축복이었어.
난 참 많은 사람들에 사랑과 도움을 많이 받았던 거 같아. 나도 이 도움과 사랑을 보답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 고등학교 2학년 때 ‘한사랑 드림밴드’라는 활동을 했었거든. ‘한사랑 드림밴드’는 아픈 친구들 중, 기타나 드럼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 모여 지금 힘들게 치료받고 있는 친구들에게 우리도 나아서 이렇게 멋지게 밴드 활동도 할 수 있고, 앞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는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만들어졌어. 처음 배울 때는 많이 서툴고 어려웠지. 수많은 연습과 노력으로 서로서로 맞춰 가며 멜로디를 맞춰 나갔어. 그리고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새해, 치료 종결 잔치 때 등등, 우리는 병실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어. 병실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어린 꼬마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가 나의 마음을 찡하게 하더라. 병실에 있기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나의 연주로 아이들이 즐거워 한다는 게너무나 뿌듯했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희망이 된다는 건 정말 가슴 벅찬 일이야. 비록 밴드활동은 2년으로 끝이 났지만 나에게 있어 정말 행복하고 값진 경험이었던 거 같아.
그리고 지금 난 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꿈을 위해 공부하고 있어. 대학교는 고등학교 때와 달리 자유로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하지만 자유란 책임이 꼭 뒤따라야 해. 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스스로 해야 하는 많은 일들에 익숙하지 않았어. 지금도 계속 맞춰 가고 있는 중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갈 거야. 그리고 그동안 쌓고 쌓은 경험으로 힘든 일이 닥쳐왔을 때, 난 어느 누구보다도 빨리 대처하고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 대학교는 자기 하기 나름이야. 어느 대학교를 나왔다는 건 중요치 않아. 열심히 한다면 그 결과는 항상 노력하는 사람 편에 서있는 걸! 지금 입시준비 하는 친구들! '대학교 어디 가야 하지? 성적이 이런데 학교에 들어 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하지 마!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대학교에 들어 간 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하고 느끼게 될거야.
지금 나는 대학교 다니면서 자원봉사도 하고 있고, 아픈 친구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배우고 성장하고 있어. 너희들도 잘 해 낼 수 있을 거야! 힘든 고민이 있으면, 항상 주위에 말했으면 좋겠어.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것은 스스로를 더 힘들게 만들 뿐이야. 바보 같은 일이지. 고민을 말할 수 있는 것도 대단한 용기야. 아! 그리고 치료를 끝내고 집에서 쉬고 있는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고 우울할 때가 종종 있을 거야. 그렇다면 뭘 하나 배워 봐. 운동이라든지 아님 영어라든지. 난 영어회화학원을 다녔는데 참 좋더라. 영어는 말할 때, 리액션이 많잖아. 영어하면서 리액션을 같이 배우고 오버하면서 공부하니까 즐겁고 자신감도 생기는 거 같았어. 영어회화 배우기를 추천하고 싶어.
병실에 누워 있었던 우리들에게 현실은 까만 밤하늘과 같아. 그 새까만 밤하늘에 희망과 용기, 내일과 미래, 우정과 사랑, 친구와 가족과 같은 별들을 수놓아 보자! 조급할 필요는 없어. 하나하나 반짝이는 별들을 찍다 보면, 새까많기만 하던 하늘이 밝은 하늘, 그리고 찬란한 하늘이 될거야!
from. 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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