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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야기
  • [완치자는희망이다 남기완] 절망을 딛고 희망으로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201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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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중·고등학교 생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병마와의 싸움이었다. 나는 중학교 1학년인 2005년에 혈액질환인 재생불량성빈혈판정을 받았다.

     

      재생불량성빈혈은 혈액 내 백혈구와 적혈구, 혈소판 등이 감소하는, 백혈병과 유사한 희귀난치질환으로 혈액수치가 감소할 때마다 수혈로 보충해주는 것과 골수이식을 받는 것 밖에는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고 알고 있다. 나 역시 중학교 때까지는 수혈을 자주 받는 것으로 버텼지만 점차 악화되어 고등학교 입학 무렵엔 생명을 위협할 정도에 이르렀다. 결국 학교를 휴학하고 말로만 듣던 골수이식을 받게 되었다.

     

      당시에는 골수이식이라는 말도 낯설었고 어떤 치료법인지 전혀 아는 바도 없어, ‘이식만 하면 금방 낫겠지.’ 하고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어쩌면 마취수술회복으로 끝나는 간단한 외과수술처럼 여겼던 것도 같다. 하지만 골수이식 과정은 내 생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다량의 항암제 투여를 위해 가슴에 구멍을 내 중심정맥관을 꽂는 수술, 엄청난 양의 항암제로 내 골수를 말려 죽이는 전처치, 항암제의 독성으로 다른 장기들까지 망가지는 위험과 약의 부작용으로 인한 극심한 구토 및 고열 등을 견뎌내야만 했다. 무균실을 나와 일반병실로 옮겨간 뒤에도 후유증으로 오래 시달리는 한편, 2개월여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한 뒤에도 감염예방과 식단조절에 주의하며 바깥출입조차 못하는 생활을 계속해야 했다.

     

      그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속에서 다 포기해버리고 싶었던 적도, 쇼크로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맨 적도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견뎌내면 병이 나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결국 모든 치료과정을 겪어냈다. 덕분에 이듬해인 2009, 고등학교 1학년에 복학해 다시 학교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 든 생각이 있었다.

     

        ‘드디어 끝났구나. 이젠 나도 고통 끝, 행복 시작이다!’

     

      그러나 1학년 겨울방학 즈음부터 몸이 다시 무거워지고 호흡이 자주 가빠지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증세가 점차 심해지더니 이듬해 초 병원 진단 결과, 재발 판정을 받았다. 이식한 골수의 생착 실패였다. 이미 심각한 중증으로 되돌아간 상태였고, 재이식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과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몇 번씩 번갈아 들었다. 왜 하필 나한테만 이런 일이 거듭되는 건지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끝없는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재이식을 안 받으면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대로 끝나버리면 이제까지 힘들었던 삶이 너무 억울하다. 한 번 견뎌냈는데 두 번이라고 못할 게 뭐 있어?’

     

      마음을 추스르고, 학교생활을 잘 마무리 짓고 2학년 때 자퇴를 했다. 그때가 20107월이었고, 9월에 재이식을 받았다. 당시 옮겨간 카톨릭성모병원에서는, 2008골수이식을 했던 고대부속 안암병원과 달리 조혈모세포 이식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마음을 아무리 단단히 먹었어도 이식의 과정은 여전히 힘겨웠다. 다 끝났다고 믿었다가 처음부터 고스란히 다시 시작하는 치료과정은, 신체는 물론 마음의 고통을 두 배로 만들었다. 밑바닥까지 떨어져 황폐해진 마음은 쉽게 복구되지 않았고, 퇴원해 집에 와서도 무기력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태로 그 해 겨울을 보냈다.

     

      그러다 작년 초에 동갑내기 친구들의 대학 합격 소식이 하나 둘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깥출입도 못하고 집에만 갇혀 사는 내게 처음에는 그 소식들이 또 다른 고통이었다. 세상이 나만 버리고 자기들끼리만 굴러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점차 바뀌어갔다. 그 애들이 부러운 한편, 나도 이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흘려보내면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되든 안 되는 일단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가 20114월이었다.

     

      마치지 못한 고등학교 과정을 독학으로 마치는 것부터 시작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내용들을 홀로 배우고 익히는 것은 쉽지 않았으나, 인터넷 강의 등을 활용하며 나름의 방식을 찾아나갔다. 그 사이 검정고시를 치렀고, 두 차례 치러진 평가원 모의고사 문제를 구해 풀어본 뒤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에 우울함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이제 와 그만둘 수 없다는 오기도 있었다. 늦게 시작한 수능 준비와 쉽게 고갈되는 체력 탓에 시간도 부족했고 미진한 부분도 많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해보자 싶었다. 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나중에 후회는 없을 것 같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만족스러운 성적이 나온 덕분에, 목표했던 연세대 사회학과와 서울대 인문대에 지원해 두 군데 다 합격했다. 나는 꿈에 그리던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1학년 학생이 되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원하는 대학에 입학해 대학생이 된다는 일이 멀기만 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꿈처럼만 여겨졌었다. 그러나 우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 내 힘과 의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놓고 기다리자는 마음으로 공부했던 것,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계속했던 것이 이처럼 좋은 결실을 맺게 한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병마와 싸워 온지도 어언 8년째가 된다. 그동안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고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적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사람이 바닥에 떨어지면 그 다음엔 올라올 일밖에 없다고 하던가. 나는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덮쳐올 때도, 첫 골수이식 이후 2년 만에 재발했을 때도 내 삶을 결코 포기한 적은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의 밑바닥에는 희망이 있었다.

     

      결국 똑같은 일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하는 것 아닐까. 병에 걸린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우울하고,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고통이다. 하지만 내가 그 사실에 우울해하고 절망에 빠져 있다 해서 상태가 나아진 적은 없었다. 오히려 암울한 상황에서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쓰고,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씨앗을 키워나갔던 게 내 몸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몸과 마음은 하나의 우주라는 말도 있으니까. 내가 그랬듯이, 오늘도 병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많은 아이들에게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고 완치의 그날까지 꿋꿋하게 버텨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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