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중학교 3학년 16살에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을 진단받았습니다. 음식을 좋아했던 저는 단순히 배탈로 몸이 안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열이 나고 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2개월 동안 많은 병원을 다녔지만 장염, 감기라는 진단만 나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어지럽고 앞이 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심각성을 느끼고 큰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엔 머리를 미는 일도, 점차 변해가는 내 모습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빨리 이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치료만 끝나면 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치료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의 치료과정은 남달랐습니다. 소아백혈병으로는 많은 나이였고 무엇보다 골수검사 결과가 너무 나빠서 2차 항암이 끝나고 방사선 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을 하였습니다. 방사선 치료는 상상한 것 이상으로 힘들었습니다. 그 당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진통제만 맞고 잠만 잤습니다. 그래도 조혈모세포이식만 잘 받으면 곧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부모님의 말씀. 그리고 학교도 갈 수 있고,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견뎠습니다. 이식은 성공적이었지만 이식 후 거부반응으로 폐 숙주 반응이 발생하였습니다. 폐 숙주 반응은 어떠한 치료에도 나아지지 않고 하루가 달리 나빠져 산소 호흡기를 사용해도 숨쉬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더욱 힘들었습니다. 혼자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제 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하찮은 존재로 느껴지고, 하루하루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식 후 학교도 가고, 친구들과 쇼핑도 다니는 희망을 품고 있던 저에게 폐 숙주 반응은 살고 싶은 마음마저 사라지게 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던 어느 날 TV에서 제 나이 또래의 가수들을 보았습니다. 매주 보던 프로그램의 가수들인데도 그날따라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나이에 꿈을 이루고 사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면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제 자신이 비참해 보였습니다. 날개도 펼쳐보지 못한 나의 인생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이 후 마지막 치료법인 폐 이식 대기 등록을 한 후 성공적으로 폐 이식을 받았습니다.
그 후, 꾸준한 운동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해졌고 검정고시를 통하여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고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하지만 대학생활은 순탄하진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거리감이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체력은 친구들보다 확연히 뒤쳐졌고, 약 부작용으로 얼굴이 많이 부었습니다. 친구에게 “언니는 말랐는데 얼굴엔 살이 많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나의 상태를 모르니 충분히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친구들에게 저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나를 피하면 어쩌지? 싫어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친구들을 믿었습니다. 다행히 친구들은 저를 이해해주었고 저는 친구들에게 더욱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치료 받을 당시에는 힘들고 괴로운 시간들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백혈병은 저의 인생에 있어서 큰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습니다. 항상 부정적이고 작은 일에 좌절하고 절망하던 저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라는 마음가짐, 그리고 고난에 쓰러지지 않고 이겨내고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치료받을 때의 아픔과 고통이 기억 속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음을 느낍니다. 저의 글이 지금 투병중인 친구들에게는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긴 투병생활이 지치고 힘들어도 희망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난과 시련 뒤에는 축복이 있다.”라는 말처럼 누구나 한번쯤은 고난과 시련이 찾아옵니다. 다만 우리는 남들보다 빨리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를 잘 극복하면 그 전보다 훨씬 빛나고 소중한 나를 맞게 될 것입니다.
유지현(1995년생)
1995년생
2010년 1월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진단
2010년 4월 조혈모세포이식, 12월 폐 이식
2014년 1월 치료 종결
현재 경민대학교 사무비서행정학과 2학년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