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저는 골육종 완치자 27살 이선주라고 합니다. 모두들 특별한 인내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겠지만, 제 경험과 이야기를 통해 환우분들과 가족분들에게 힘이 되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17살에 골육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모두에게나 그렇듯 저 또한 예고 없는 아픔이었습니다. 중3, 홀로 미국으로 유학을 간지 1년이 되던 해에 부모님도 없는 타지에서 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외동딸을 키우시던 저희 부모님께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이었습니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듯이 저도 어릴 때부터 건강한 아이였습니다. 초중학교 때 모든 체육 종목에서 항상 1등을 하였고, 미국에 가서도 하키, 축구, 승마 등 모든 시합을 뛰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왼쪽 무릎이 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나 부모님 모두 시간이 지나면 나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혼자 기숙사 방에서 휠체어에서 일어나 한 다리로 이동을 하다 넘어지면서 왼쪽 허벅지가 부러졌습니다. 의료진이 부러진 뼈 사이로 뭔가 이상한 것이 보인다는 말에 조직검사를 비롯해 각종 검사를 한 결과 골육종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병원 생활은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습니다. 다리가 부러진 대다가 무릎 고통이 너무 심해 매일 몰핀, 그리고 나중엔 하반신 마취상태로 지냈기 때문입니다. 두 달간 미국에서 항암치료를 받다가 미국의료진은 아무래도 고향인 한국에 가서 나머지 치료를 받는 것이 길게 보아 저에게 좋을 것 같다고 하여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의료진이 말한 것과는 달리 뛸 수도, 그다지 평범하게 활동을 할 수도 없게 되었지만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힘들게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중단했던 학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온라인 수업을 들었습니다. 다니던 미국 고등학교의 배려였습니다. 입원실에 교과서를 쌓아놓고, 페이퍼를 쓰고, 시험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저 공부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내가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고, 부모님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도 행복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가장 힘든 일은 또래 여자 친구들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예쁜 교복을 입고, 긴생머리로 뛰어다니는 모습이 얼마나 부럽고, 또 서러웠는지 모릅니다. ‘나도 저렇게 예쁜 다리에 긴 생머리가 있었는데.’하면서 늘 울었지요. 저는 그때마다 일기를 썼습니다. 이런 서러움을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한테 얘기해봤자 잘 모르니까, 열심히 일기를 썼고 그게 지금은 제 보물입니다. 지금 제가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마다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내가 어떤 힘든 일들을 다 극복했는지,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일 년 반 동안의 치료를 끝내고 다시 미국 고등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걷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언덕 위에 있는 학교를 혼자 다녀야 했습니다. 기숙사 단체생활을 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의 과한 염려로 많은 활동을 제약 당했습니다. 저는 건강하게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학교와 시오케스트라 4곳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였으며, 전과목 만점으로 대학과정을 이수했고, 한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연구도 참여하고, 전교생 앞에서 소아암에 대한 발표를 하여 모금활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신체적 제약이 크다 보니 할 수 있는 것이 공부밖에 없기도 했지만, 그동안 할 수 없던 공부라 누구보다 즐겁게 공부했습니다. 그리고는 대학원서를 넣고 마지막 학년을 보내던 중, 수술한 다리가 다시 부러지는 믿지 못할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때가 제 인생 중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대학 인터뷰만을 기다리던 중요한 때였기에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미국에서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졸업식도 참여하지 못한 채, 가장 우울한 몇 달을 보냈지만 수술을 잘 마치고 미국의 좋은 대학에도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힘들다는 미국대학을 졸업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무사히 3년 반으로 조기졸업을 했습니다.
우리 암투병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 더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오곤 합니다. 마음이 무너지고 하늘이 무너져도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또 견디고 또 이겨내다 보면, 다시 좋은 일은 찾아오기 마련이니 좌절하지 말고, 옆에 있는 가족들과 함께 다시 힘을 내기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나와 다른 상황의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길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끝날 이 터널을 걸어가고 있는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하길 바랍니다. 환우 여러분들도 이제 치료가 끝나면 세상으로 다시 나가야 합니다. 그때는 병실에서의 전쟁보다 더 혹독하고 냉담한 세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편견과 오해가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지만, 두려워하지도 주눅 들지도 마세요. 우리는 세상에 치여 바쁘게만 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삶의 소중함을 진심으로 아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아직 하고 싶은 것을 그래도 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게 얼마나 기적 같고 소중한지를 직접 경험했기에 앞으로 우리가 어느 자리에서 무엇을 하던 빛이 날거라 믿습니다. 앞으로 재단을 통해서 더 많은 환우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고,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파이팅!!
이선주(1990년생)
2006년 10월 골육종 진단
2008년 4월 치료종결
2015년 미국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대학교 정치학 전공 졸업
현재 한국 법학적성시험 준비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