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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야기
  • 인생은 미완성 - 현서 가족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2017.10.13
  • 더불어사는22014년 11월 13일 목요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일.

    고등학교 교사인 엄마는 주중에 오래간만에 쉬는 황금 같이 귀한 이 휴무일을 오롯이 현서하고만 하루를 재밌게 보내리라 생각합니다.

    감기에 걸려, 유난히 기운이 없고 입맛을 잃은 아들, 현서가 마음에 걸려 데이트 신청을 했지요.

    현서의 바램은 영어도서관에 엄마랑만 가는 것.

    형과 여동생 사이에서 엄마 사랑이 간절했나보다 생각하고 즐겁게 시작한 데이트는 눈물로 막을 내렸습니다. 일주일 후에 현서는 간, 비장, 골수에 전이가 된 악성림프종 4기로 진단받은 환아가 되었습니다.

     

    치료 초기에 ‘용감한 아이통장’을 받은 아이는 힘없이 말했습니다.

    “엄마, 나는 용감한 아이가 아니야. 저승사자가 너무 무서워.”

    코끝이 찡해진 저는 현서에게 단호히 말해 주었습니다.

    “채혈할 때도 보채거나 울지도 않고, 저승사자도 만나고 천사도 만난 현서가 정말 용감한 아이야. 의사선생님 믿고, 열심히 치료해 보자.”

    다짐이 용기가 되는 그 순간이, 18개월의 항암치료를 마치는 힘이 되었습니다.

     

    현서는 유지치료를 시작하자마자 약한 몸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친구 한 명도 사귀지 못한 채 입학 다음 날 입원했습니다. 재단에서 소아암 교육을 해 주신 ‘학교속으로 GO! GO!!’ 프로그램으로 현서의 병에 대해 알게 된 반 아이들과 선생님은 정성스러운 손편지로 저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시작한 학교생활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4학년 남학생이 계단에 올라가는 현서를 ‘대머리새끼’라고 놀리며 모자를 강제로 벗기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또 철딱서니 없는 동네 형은 현서에게 “너, 암환자냐?”고 물어 보았답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매번 엄마가 쫓아가 따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서 스스로 대응하게 하는 것이 답이라 여겼습니다.

    당장 재단에서 진행하는 미술치료를 신청했습니다. 현서는 엄마, 아빠에게 미처 말하지 못했던 고민과 속마음을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치료받았습니다. 상담선생님은 상처 입은 엄마 말에도 귀 기울여 주시고, 마음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시고 육아 조언도 해주셨습니다.

    한편으로는 약한 아이의 체력이지만, 바깥활동을 많이 해서 자신감을 키워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재단의 여수 아쿠아리움 체험에 가족이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체험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힘든 항암도 이겨내는 아들을 위해 엄마부터 자신 있게 ‘당당하자’고 여겼습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아들은 질병을 부끄러워하지도 감추지도 않고, 오히려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에 머무는 시간의 아이 체력도 보충해야 했습니다.

    저는 현서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허락을 받아 등교ㆍ간식ㆍ하교시간, 하루 세 번 찾아갔습니다. 두 달이 한 사이클인 유지치료 동안 작은 아이 몸에 들어가는 항암제 종류만 10가지입니다. 16개월 유지기간 내내 아침시간에 오심이나 구토 없이 학교에 가는 날이 거의 없었던 아이를 위해, 매일 3종류의 멸균 간식을 만들어 중간놀이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갔습니다.

    어느 순간, 중간놀이 시간에 현서를 따라 간식 먹으러 오는 반 아이들이 생겼습니다. 아들은 웃으며 간식 먹어 체력을 키웠고, 자연스럽게 친구도 사귀었습니다.

    아파도 스스로 해야할 줄 아는 게 많아야 한다고 말해줬습니다. 히크만 카테터를 비닐과 반창고로 꽁꽁 싸매서 밀봉해 주면, 8살 아이 혼자 샤워도 했습니다. 현서는 학교에서 갑작스러운 손발 떨림, 오심이나 구토가 있을 때,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도 터득했습니다. 자존심에 꾹 참고 한 번도 실수는 안했다고 하네요. 엄마 없을 때 배고프면, 간식과 음료도 챙겨 먹었습니다. 현서는 그렇게 조금씩 기력을 회복해 가고, 학교생활에도 적응해갔습니다.

     

    항암치료 종결의 날.

    그 소식을 듣고 마스크 속에서 기쁘게 씩 웃던 현서의 표정. 지금도 그 감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치료 종결 후 여수에서 아이와 둘만의 데이트를 했습니다. ‘버스커 버스커’가 부르는 여수 밤바다를 들으며 바닷가를 걷고, 희망찬 내일을 이야기 했습니다.

    서로 부둥켜 안으며 고생했다고 어깨도 토닥였습니다.

     

    항암치료 종결 후 일 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현서의 소원은 치료 끝나면 아프기 전처럼 가족들과 해외 여행하는 것입니다. 작년에 종결기념으로 유럽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발레도 배워서 발레리노로서 대회에서 수상도 했습니다. 피아노도 치고, 성악도 배웠습니다. 올해는 학수고대하던 물놀이도 다녀오고, 수영도 배웠습니다. 이제 현서는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초등학교 3학년 개구쟁이입니다.

    면역 수치가 올라 마스크에서 해방되고 나서는 친구들도 더 많이 사귀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들은 다음 날, 아침부터 꽃단장하고 학교에 갑니다. 엄마는 치료 종결 후 더 많은 것을 경험한, 부쩍 키도 크고, 밝아진 아이의 모습이 반갑습니다. 소소한 일상을 누리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엄마인 저는 아픈 아이에게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절망도, 슬픔도, 화나고 안타까운 마음과 기쁨도, 내 곁에 있어 준 아이 덕에 느껴보는 진심입니다. 아이가 치료받는 동안 ‘안돼, 하지마’라는 말을 자주 했던 것들이 미안해집니다. ‘더 현명하게 대할 걸’ 후회도 해봅니다. 아픈 아이에게 내 인생이 얽매인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 부끄러워집니다.

    일시적이나마 사회와 단절됐던 그 시간 동안 서운한 마음을 아들에게 이야기했던 것이 창피합니다. 아픈 아이를 옆에 두고 3년 휴직기간이 길어지자 교사로서 학교 근무 시절을 가끔 그리워했던 제 자신이 무안해집니다.

     

    현서랑 단 둘이만 함께할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될까요? 아이가 아프기 전까지는 오롯이 현서를 위해서만 있어 줬던 날들이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엄마랑 아들이 같이 의지했었던 지난 병원생활이 더없이 소중합니다. 엄마는 아픔을 이겨낸 아들을 통해 인생이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미완성인 채로 함께하는 것임을 깨달아갑니다.

    어린 나이에 역경을 잘 이겨낸 개구쟁이 현서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감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그리고 도움을 주신 분들의 고마움을 꼭 기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의젓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래봅니다.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은 현서는 2016년 5월 치료를 종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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