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소식
재단의 모든 소식 및 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나눔이야기
  • 존재의 이유 - 박은영 완치자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2018.11.01
  • 소아암을 이긴 아이들 사진_박은영2002년, 어린 나이에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을 진단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남해’라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살이를 했습니다. 엄마는 낯선 곳에서 기약 없는 살림을 시작했고, 아빠는 병원비를 위해 새벽같이 배에 타셨고, 언니는 친구 집에 맡겨졌습니다. 그 후 병의 존재가 내 탓이 아님에도, 고생한 가족만 생각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저려서 죄인처럼 작아졌습니다. 자존감은 더욱 낮아졌고, 스스로를 미워했습니다. 혹시 과거의 저처럼, 자신이 누군가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는 환자가 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 상처 받았던 아이가 존재의, 삶의 이유를 찾아간 이야기를 적어가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가 저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또 가지고 있는 당신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한창 뛰어놀 나이에 어리광 참는 법을 배웠고, 자연스럽게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건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효도였으며, 가슴 한 편에 무겁게 자리 잡은 부모님에 대한 보답이었습니다. 독한 항암치료는 시골 아이에게 지긋지긋한 악바리 근성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성적에 집착했던 것과는 달리, 중학교 내내 제 꿈은 ‘네일 아티스트’였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 쌓아왔던 공부를 포기할 만큼의 깡도, 자신감도 없었습니다. 또한 저를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부모님 생각도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티는 안내시지만 제가 공부를 조금 더 했으면 하고 바라실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까지 부모님께 빚을 갚아야하는 죄인이었으며, 공부는 마치 예정된 실패의 도피처 같은 존재였습니다. 저의 존재를 빛냈던, 그 꿈을 ‘나도 그렇게 원하지 않았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접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 무렵, 기적처럼 다시 꿈이 생겼습니다. 고향 집에서 1분 거리에 도서관, 책과 한적함이 있는 2층 열람실은 일종의 도피처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저 평소와 같이 잠깐 머물렀던 도서관에서 문득 여기에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서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부모님을 위해 사회적으로 더 인정받는 직업을 가져야할 것만 같았습니다. 어렵게 꺼낸 딸의 고민에 부모님은 애초부터 제 꿈과 행복을 지지해왔다는 말씀으로 응원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해서, 무작정 좋은 직업이 부모님의 행복이라 생각했던 어린 생각이 부끄러워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사건은 꿈을 좇아 주체적인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준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제 늘 제 존재를 소중히 여겨줬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작년 새벽녘, 간호학을 전공하는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내가 백혈병에 대해서 조금 배웠는데 네가 건강하게 있어줘서 고맙네. 생각보다 위험한 병이라는 걸 배우면서 느꼈다.” 늘 짐처럼 무겁게 저를 누르던 그 병의 존재가 제 존재만으로 용서된다는, 건강해서 고맙다는 그 말이 심장을 콕콕 찔렀습니다.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새벽, 삶의 이유가 또 하나 생겼습니다. 또한 지난 날의 ‘네일 아티스트’라는 꿈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제가 포기했던 그 꿈은 지금 뷰티학과에 진학 중인 친구가 펼치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저에게 너의 어린 시절 꿈도, 현재도 충분히 멋진 삶이라고 이야기해줍니다. 그렇게 네일아트는 친구와 함께 하는 아름다운 취미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자’라는 제 삶의 지향점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그렇게 살지 못한 과거가 많으며, 그것 때문에 저를 사랑하는 만큼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이 저처럼 학창 시절에 병을 앓았다면, 혹은 앓고 있다면, 상상만큼 멋진 사람이 되지 못해서 가슴 속에 큰 상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죄인이 아닙니다. 당신은 누군가의 희망이자, 당신 자신의 희망입니다. 저도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직도 자신이 밉다면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당신만의 ‘꿈’을 찾기를 바랍니다. 물론 당장은 꿈이 없을 수도, 혹은 그 꿈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는, 그리고 당신은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힘든 시간을 이겨냈고, 또 이겨낼 것이니까요. 더 악착같이 버텨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향해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그 길은 혼자가 아니라,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음을 잊지 마세요. 그들은 우리의 또 다른 존재의 이유가 되니까요. 그들을 위해 살아갈 필요는 없지만, 그들에게 항상 감사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언제나 당신의 뜻을 지지해주는 든든한 당신의 편이 되어줄 것입니다.

    박은영(1998년생)

      2002년 3월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진단

      2004년 6월 료종결

      현재 성균관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재학 중

댓글
닫기버튼

개인정보 수집 및 사용에 관한 동의
본 재단은 웹진(뉴스레터) 신청에 관하여 개인정보를 수집 및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 또는 조회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개인정보 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4조에 의거 신청자 본인의 동의를 얻어야 함을 알려드립니다. 이에 신청자 본인에게 아래와 같이 본인의 개인정보를 수집이용 및 제공(조회)하는 것에 대한 동의를 요청합니다.
수집이용 및 제공(조회) 목적 · 웹진(뉴스레터) 발송
수집이용 및 제공(조회)할
개인정보 항목
· 개인식별정보 : 성명, 연락처 등 고유식별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위 개인정보는 수집이용에 관한 동의일로부터 위 이용목적을 위해 보유(사용)됩니다. 다만 기부자 본인의 요청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원처리 및 사례관리 등을 위해 지속적으로 보유(사용)할 수 있습니다.
동의를 거부할 권리와
거부에 관한 불이익
위 개인정보의 수집이용에 관한 동의에 대하여 거부할 수 있으나,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 웹진을 신청할 수 없습니다.
위와 같이 본인의 개인정보를 수집(사용)하는 것에 동의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