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치료 중인 청소년(나희)과 소아암 치료가 종결된 대학생(미경)과의 만남! 어떤 대화가 오갔을까요? 이들의 대화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볼까요?
나 희 : 안녕하세요.
미 경 :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나 희 : 언니는 언제 치료 받았어요?
미 경 : 초등학교 5학년때 발병했어. 이식하고 나서 6학년 때 치료가 끝나고, 학교에 갈 수 있었는데, 무릎에 물이 차서 중고등학교 때까지 체육은 하지 못했어.
나 희 : 저도 지금 학교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요. 이것저것 제약도 많구요. 그래서 친구 사귀는 게 너무 힘들어요.
미 경 : 그렇구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가 내가 백혈병이라고 놀렸어. 그런데 그때 아무 말도 못했어. 결국 다른 친구가 ‘너 그런 말 하지마.’ 라고 대신 얘기해 줘서 위기는 모면했지. 놀렸던 친구가 실수였다고, 생각이 짧았다고, 사과하기는 했지만, 그때 당당하게 얘기하지 못하는 나 자신한테 충격을 받았어.
나 희 : 친구 때문에 속상했겠어요. 친구들이 병을 모두 알았나 봐요?
미 경 : 응. 중학교 때도 머리가 나지 않아 모자를 쓰고 다녔거든. 친구들한테는 얘기하지 않았고, 담임선생님께만 말씀드렸어. 백혈병이었다는 것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었어. 그래도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알게 되더라구. 한 번은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랑 싸웠는데, 싸우는 중에 친구가 “너는 백혈병에 걸렸다면서 집에나 있지. 왜 학교에 왔니?”라는 말을 하더라구. 그 때는 어릴 때처럼 숨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얘기했어. 그랬더니 친구가 미안해 하면서 사과했어.
나 희 : 저는 아이들과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 힘들어요.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문화가 있는데 전 그 대화, 문화에 끼어들 수가 없어요. 그래서 더 학교에도 안가게 되고, 지금은 이렇게 활발한데 친구들한테는 다가가기가 정말 힘들어요.
미 경 : 맞아, 나도 그랬어. 며칠 학교에 못나가다가 가면,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내가 없을 때 일어난 일들을 얘기하고, 난 멍하니 있고 그랬어. 그게 조금 힘들었어. 하지 만 치료 중, 그리고 치료가 끝나고 나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친구,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들 같아. 그래서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말도 걸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공감하기 위해 나름대로 많이 노력했어. 요즘은 휴대전화 문화가 워낙 잘 되어 있어서, 병원에 있을 때도 친구들과 통화하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갖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나 희 : 친구들이 모두 바빠서 연락하기도 힘들어요. 이런 것들이 모두 극복해야 하는 문 제이긴 하지만 좀 힘들어요. 특히 학교진도도 못 따라 가서 그것도 힘들구요.
미 경 : 공부, 정말 어렵지. 나는 발병 전까지만 해도 공부를 잘했어. 아니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잘 했구나^^. 엄마는 항상 “공부하지 마라, 건강이 제일 중요하.”라고 하시며, 보호하려고만 하셨어. 엄마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는데, 그 마음 잘 알기는 하는데, 너무 보호하려고만 하니까 더 스트레스를 받았어. 내가 어리기만 한 것은 아닌데 말이야. 처음 백혈병 진단을 받고 거의 두 달을 엄마가 날 속였어. 곧 나을 것이라고만 했었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 건 느끼고 있었어. 그러다가 엄마가 친구랑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내가 백혈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때 엄마가 밉지는 않았어. 우리 엄마는 약하니까 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엄마가 더 힘들어 견디지 못할 걸 알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었어. 엄마는 계속해서 날 감싸기만 했지. 엄마가 공부하지 말라고 했을 때는 이런 생각도 들더라구. ‘난 남들보다 빨리 죽는가 보다. 그래서 엄마가 저렇게 다 필요 없다고 하나보다. 그래. 어차피 죽는 거라면 노력하지 않아도 되겠구나.’라고 말이야. 지금에서야 엄마가 말씀하셨던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지만….
치료를 받으면서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이 긍정적인 마음인 것 같아.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상대하기 싫었고 간호사 선생님 얼굴도 보기 싫었어. 주변에서 3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들과 얘기하고, 주위 사람들이 나의 병을 알아가면서 서서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어. 내가 백혈병에 걸렸다고 날 멀리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 오히려 치료를 견딘 나에 대해 대견해 하고, 말없이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준 친구들도 너무도 많았어. 그러면서 더 긍정적인 아이가 되었던 것 같아. 어차피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받아들이고 잘 이겨낼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생각을 바꾼 후부터는 당당해졌던 것 같아.
나 희 : 우리 엄마는 처음부터 바로 백혈병이라고 얘기해 줬어요. 매우 심각하게 얘기한 것이 아니어서 저 또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냥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 그것이 치료에는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언니는 어떤 게 제일 힘들었어요?
미 경 : 함께 치료받다가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아이들을 보면서 많이 힘들고, 두려웠던 것 같아. 하지만 그것도 ‘생각하지 말자, 그 친구보다 난 더 강해져야 해.’라고 되새기며 잊으려 노력했지.
나 희 : 저도 그럴 때가 너무 힘들었어요. 정말 힘든 것 같아요.
미 경 : 아, 그리고 가족들에게 많이 미안했어. 아플 때 언니가 고3 수험생이었는데, 모두 나한테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서, 언니를 돌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아니 관심도 갖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하루는 언니랑 텔레비전 문제로 싸움을 했어. 언니는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잠을 자는데, 난 그게 너무 싫었어. 그래서 끄라고 하다가 싸움이 되었어. 그런데 그 때, 언니가 울면서 모두다 병원가고 없을 때 혼자 너무 무서워 텔레비전을 켜놓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그래서 지금도 버릇이 되어 텔레비전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잠이 안온다고 말하는 거야. 너무너무 미안했어.
나 희 : 맞아요. 오빠도 제가 치료받을 때 고 3이었어요. 몸이 아픈데도 엄마에게 걱정 끼치기 싫어서 얘기도 하지 않은 거예요. 학교도 못갈 정도였는데, 그걸 모르는 엄마는 얼른 학교가라고 혼내고, 오빠는 혼나면서 학교에 갔다가 조퇴하고 온 사건이 있었어요. 나 때문에 일어난 일 같아서 너무도 마음이 아팠어요.
언니 남자친구 있어요?
미 경 : 그동안은 남자친구를 사귀지 않았어. 사귀다가 내가 아팠던 것을 알게 된다면 나를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겁부터 먹었던 것 같아. 그런데 21살이 되면서 나도 내가 아팠던 사실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당당해질 수 있게 된 이후, 남자친구가 생기게 됐어어. 아직 백혈병이라는 것은 모르지만 많이 아팠다는 것은 알고 있어.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 얘기는 안했는데, 얘기한다 해도 아마 이해해줄 것 같아. 지금까지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병을 앓았다고 얘기해서 멀어졌던 경우는 없었으니까. 믿어. 그렇게 보면 난 운이 참 좋았어. 대학 들어와서도 정말 힘들었는데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아서 많은 도움이 되었고, 또 앓았다는 사실로 혜택 받은 부분도 많은 것 같아.
나 희 : 언니 꿈은 뭐예요?
미 경 : 난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살아오면서 받은 것이 너무 많아. 내가 아픔으로 인해 지금까지 받았던 도움, 사랑, 언젠가는 다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 이 생각을 항상 마음 속으로 되새기고 있어. 내가 이젠 사회복지사가 되어 지금까지 내가 받았던 것 이상으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되돌려 줄거야. 이제는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소아암 치료라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그리고 통과하고 있는 둘의 대화는 끝이 없었습니다.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공감할 수 있었고, 격려해 줄 수 있었습니다. 클라이언트에게 꿈을 심어 주고,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미경이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그리고 몇 년 후에는 나희가 또 다른 소아암 치료 중인 친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