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0년 병원에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감기라고 했는데 낫지 않았다. 대학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한 달 정도 있다가 눈에 출혈이 생기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겼다. 안과검사도 주기적으로 받고, 항암치료도 받았다. 열이 나서 응급실을 가기도 했다. 항암치료를 몇 번 마쳤을 때, 눈 수술을 하자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무서웠다. 하지만 수술을 끝내고 나니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수술을 끝내고 한사랑의집에서 지냈다. 한사랑 의집에서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미술치료를 다녔다. 또 답답할 때는 엄마와 밖에 나가 걷기도 하였다. 바람을 쐐서 좋기는 했지만, 여름에는 날씨도 더운데 모자와 마스크까지 써야 돼서 곤혹스러웠다. 또 가끔 우울한 생각이 날 때는 조금씩 취미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며 지내니 어떤 때는 치료생활이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안지나갈 것 같은 3년이 훌쩍 지나갔다.
3년의 치료를 마치고 나자, 학교에 가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별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가야 했기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고, 친구들과 조금 동떨어져있다는 생각으로 힘들었다. 그리고 학교 공부를 잘 못 따라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이것 때문에 많이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그렇지만 조금씩 적응되면서 학교생활도 괜찮아졌다. 친구들도 선생님도 편하게 대해주고, 잘 챙겨주었다. 선생님은 나를 많이 염려해 주고 각별하게 신경써주었다. 친구들은 질투하지 않고 이러한 상황도 많이 배려해 주었다.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학기 초에 했던 걱정은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학교생활이 즐겁다.(그렇지만 가끔은 가기 싫은 날도 있다.)
요즘은 체육시간에 다른 아이들과 같이 체육활동을 하고 있다. 아팠기 때문에 체력이 다른 아이들과 같지 않다고 말씀드렸지만, 키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훨씬 크고 건강해 보이는 내 외모 때문에 믿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체육활동도 많이 적응되어서 할 만하다.
치료받았던 3년이 시련이기도 했지만, 잘 생각해 보면 못해본 경험, 안 해본 경험을 한 것도 같다. 나와 같이 치료받고 있는 친구들이 ‘조금 참고 견디면 치료를 마치고 일상생활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편하게 생각하면서 치료받았으면 좋겠다.
- 이 글은 소식지 '희망미소' 2013년 겨울호에 실렸습니다.